배터리는 팔 프로밖에 없다. 나는 나의 방앗간에 있고, 하리보 젤리를 먹고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힘든 날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비였다. 접이식 우산을 썼지만 바지 밑으로, 거의 치골 선 아래로는 다 젖었다. 엉덩이와 로퍼 안까지 축축해졌을 정도다. 김광민이 좋다. 역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그 두가지가 겹친 날에는 김광민만한 것이 없다. https://open.spotify.com/track/5qs2kn2GzSlEc94bzmPTbW?si=hJqZBcH1QEG1W3QiIwxDUw Here`s That Rainy DayKim Kwang Min · Song · 2007open.spotify.com 좋은 소식 하나는 방에 에어콘을 달았다는 것이..
찬 물로 샤워를 하고, 국진이빵을 한 입씩 베어문다. 차가운 핸드드립 커피를 들이키고 눕는다. 선풍기가 나의 맨 살을 간지럽히듯 뒤덮고, 라디오에서는 FM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완벽하다. 내일 설교라는 것만 빼고는. https://open.spotify.com/track/2loAdBnjOUb9B64pbviZ7N?si=joITdf8eRea37wkqmQr6YQ Nocturne in E minor, Op. 72, No. 1Frédéric Chopin, Janusz Olejniczak · Song · 1995open.spotify.com 그리고 좀 쉬다가 일어나서, 얼개만 써놓은 원고를 다듬고 채워넣고 새벽 내 성경 구절과 인용 글귀 등의 감수를 해야 한다는 것만 빼고는. 더할 나위가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새..
피씨방 일을 도와주던 어느날이었다. 할 줄 모르는 가족의 피씨방 일을 닥치듯이 이것저것 하고 있을 때였는데. 몇일 간 밤을 지새며 도왔던 날들 속에서 한 장면이 나의 마음 속에 깊숙이 남게 되었다. 에어콘이 세차게 돌아가는 서늘한 지하에서 피씨 방 일을 하다 보면 밖이 날씨가 어떤지, 지금이 몇 시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잊고 어떤 암흑의 시간 속에 있게 된다. 몇 날을 해봐도 일은 손에 익숙해 지지 않았다. 마음은 분주하고,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 일을 잊지 못하고 다른 일에도 연달아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의 결벽증이 있던 나는, 그야말로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대단할 것 없는 그 일들에 임하고 있었다. 마음도 공간도 어두침침한 피씨방에서, 그렇게 나는 밤을 꼬박 지샜고, 바깥은 어느덧 광명이 ..
비오는 여름추운 올나잍매끄 도나르도에서 꼬박 밤을 지새웠다.더블 치즈 버거 세트를 먹고. 집에서 내려서 가져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마트에서 산 웨하스를 먹으면서 유튜브를 보고. 투비 조회수 이벤트에 참여하고, 알라딘 이북 포인트를 적립하고, 모인 포인트로 어떤 책을 살까를 고민하며 보냈다.새벽 내내 통창 밖으로는 축축한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꾸벅꾸벅 졸면서, 밤이 새도록 그러고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혼잣말로 나지막이 욕을 했다.이해할 수 없이 삶에 일어나는 황당하고 부조리한 일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옷을 갈아입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몇 번씩 깼다 자다를 반복하다가 완전히 깬 것은 오후 네 시경..박기훈이라는 뮤지션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
방앗간의 참새처럼 드나드는 한 중고서점 위에는 이따금 어떤 아저씨, 아니 할아버지가 보인다. 어느날 그 할아버지, 아니 아저씨가 내가 세워둔 자전거를 밖으로 옮기시려고 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 제가 옮길게요. - 그쪽 꺼에요? 네. 죄송합니다아. 그 아저씨가 건물 관리 일을 맡아 하시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따라 아마 거의 처음으로 자전거를 건물 현관 안쪽 깊숙이까지 들어오도록 세워두었다. 소심한 만행을 처음 저지른 날, 때마침 아저씨가 발견하시고 자전거를 밖으로 옮겨두려고 하셨던 것이다. 때마침 나도 나가려던 참에 그 장면을 보았고, 나는 죄송하다고 얼버무려 말씀드리며 얼른 자전거를 밖으로 빼서 타고 달아나려고 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굳이 한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니, 아실 만..
자기 것은 없고, 남의 것에 좋아요만 누르는 나는 내가 가장 증오하는 나이다. 남의 일을 해주느라 나의 시간을 팔아 돈을 벌고, 그에게는 더 큰 돈을 벌어주는 나는 내가 가장 불쌍히 여기는 나이다. 핵심은 정말 사랑하는가이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연쇄 좋아요마가 아니라 정말 하나를, 또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내가 지금 추구하는 길을 나는 사랑하는지. 그것을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인생의 성공은 사랑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는가- 히는 것에 달려 있다. 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며 살 수 있는가. 나아가 품을 넓게 써서, 누구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까지.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일에 자기 목숨을 걸 수 있게 된 사람보다 더 통쾌한 승리자는 이..
2024년 6월 23일 하늘은 높았다. 그리움은 오늘 먹구름처럼 짙고, 열풍을 품은 채의 녹진하고 시원한 여름 바람처럼 먹먹했다. 처음 뵙는 분의 저녁 초대 자리가 어리둥절했지만 태연하게 허허 웃으며 녹아들었다. 옥상의 상추나, 깻잎이나, 화초와 꽃. 우선 이 사랑과 예쁜 정성과 화기애애함이 익숙했고, 익숙해서 더 사무쳤다. 너무나도 익숙한, 생명에 대한 사랑의 이 한복판에 있을수록 한 사랑을 그리워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낯가림과 실수를 안 해야 한다는 어떤 긴장이 춘설처럼 녹아내렸다. 겨울은 아무 힘도 없다는 듯이. 방금 딴, 생명을 머금은 상추를 튼튼한 어금니로 빻아 질겅질겅 씹어먹으면서, 기가 막힌 시간들을 더듬어보려 애썼다. 이게 다 무슨 의미들인지. 생명과 넉넉한 마음들. 염분을 삼키며 나는 ..
2024년 6월 28일 이 글에서는 어떤 염세적인 캐릭터가 많이 드러납니다. 자물쇠로 굳게 잠근 일기장에만 쓸 법한 글이 담겨 있습니다. 글쓴이에 대해 좋은 이미지만 갖고 싶은 분들은 여기서 멈춰주세요. 하지만 대단한 자물쇠 일기는 아니에요. 흑화된 오리피. 절망의 라이터. 가 살짝. 아주 살짝 비치는 정도로. 하늘거리는 암막 커튼 사이로. 케이스 1 고등학교 때는 한 친구가 그랬다. '솔직히 **이 노래 잘하는 것 빼고 별 것 없지.' 사실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마찬가지로 뒷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두 명 중 한 명이, 4 분단에서 낄낄거리며 친구의 입을 막았는데. 입을 막힌 친구가 손을 뿌리치며 **아 - 하면서 나한테 이른 것이다.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아주 마음을 통하는 친구들은 또 아니었고,..
1 오늘의 수면 시간은 11시간 정도. 무인 카페에서 두 시간 남짓, 집에 들어와서 여덟 시간 남짓. 두어 시간이나 됐을까. 선잠의 선상만을 들락날락거리던 어제의 수면에 대한 보상 작용이었다. 저 여기 들어갈게요. 집에 다 와서, 나는 갑자기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밤 열한 시 즈음이었다. 굳이 백 미터 앞의 집을 놔두고, 골목의 작은 카페로 들어갔다. 작은 무인 카페에서 마음과 몸을 쉬고 싶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활기를 안고 들어갔지만 이내 추풍낙엽처럼 널부러졌다. 강력한 에어콘 바람에 자켓 깃을 저미며 노트북이 떨어지지 않도록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엎드려 자다가, 도대체 내가 뭐하고 있는건가 깨달음이 올 즈음 나만큼 카페 단수가 높아보이는 젊은 여자를 혼자 두고 집으로 도망쳤다. 나보다 먼저 들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