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국진이 빵

찬 물로 샤워를 하고, 국진이빵을 한 입씩 베어문다. 차가운 핸드드립 커피를 들이키고 눕는다. 선풍기가 나의 맨 살을 간지럽히듯 뒤덮고, 라디오에서는 FM영화음악이 흘러나온다. 완벽하다. 내일 설교라는 것만 빼고는.

https://open.spotify.com/track/2loAdBnjOUb9B64pbviZ7N?si=joITdf8eRea37wkqmQr6YQ

Nocturne in E minor, Op. 72, No. 1

그리고 좀 쉬다가 일어나서, 얼개만 써놓은 원고를 다듬고 채워넣고 새벽 내 성경 구절과 인용 글귀 등의 감수를 해야 한다는 것만 빼고는. 더할 나위가 없다. 적어도 지금 이 새벽 이 순간은 말이다.

나는 여름이 좋다. 이토록 더워도, 나는 이 뜨거움과 지침들이 좋다.

동네 빵집에서 파는 국진이빵

도망치듯 집을 나가 자취를 하면서, 나는 지구인이 아닌 것처럼 살았다. 중력이 없는 곳에서 살아봤는가. 2년의 시간을 마음이 붕 뜨고, 몸도 우주 미아처럼 붕 떠서 말이다. 월세를 독촉받으며, 주말이면 주인의 주거 침입은 예사롭게 일어났다.

한 3년 만에 들어가본 빵집.

사진속 동네의 빵집은 그렇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져 있었다. 원래 살던 나의 고향. 풍요롭던 날들에, 이따금 한번씩 약간 촌스럽게 단 마카롱이나 국진이 빵이나 샐러드 빵이나 샌드위치 같은 것을 딱 먹고 싶은 만큼만 사다 먹던 곳이다.

왜 그랬는지 힘든 날들 동안 나는 나의 동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이 정겨운 빵집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돌아온 탕자처럼 무심하게 딸랑거리는 빵집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뭉클거리는 마음을 삼키며 함참을 둘러보다가 겨우 천오백 원 짜리 국진이빵 하나를 집었다. 저렴하기도 했지만 옛날, 내가 나였던 날들에 한번씩 먹었던 기억이 나서, 얼른 움켜 들었다.

주인 아저씨는 나를 기억하시는지, 약간 엷은 미소를 머금으시며 오백원을 거슬러 주셨다.

FM영화음악, 에스프레소 커피가 아닌 핸드드립 커피, 옛날 선풍기 소리, 여름의 시원후덥지근한 바람, 그리고 국진이빵.

핸드드립 장인의 아이스 드립 커피

어느덧 MBC FM영화음악에서는 영화 피아니스트의 ost 쇼팽 발라드 1번이 흘러나온다. 인생은 이렇게 작고 작은 설렘과 행복들이었는데. 이것들이 송두리째 날아간 것 같은 몇 년을 보냈다. 그리고 이렇게 돌아왔다. 나의 가장 사랑하는 당신만을 쏙 빼고서,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