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튀김과 오뎅을 먹었고, 햄버거 가게에서 찬 콜라와 함께 감자 튀김과 새우 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내달려 카페로 향했다.사인석 쇼파 자리에 자리를 잡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신해철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다. 그랬지.. 그랬지.. 그 애가 아이리쉬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오늘처럼 찬 공기를 가르고 실내화를 신고 달려가 그 애를 만나기 전 남자 화장실에서 떨면서 외모를 점검하고 있었지. 문득 눈을 뜨니 한 아줌마가 바로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계셨다. 내 앞에 놓인 테이블은 깨끗했고, 나는 덩그러니 사인석 쇼파의 복도쪽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바리스타 바에서는 브류잉 머신을 새로 세팅중이라 이제 막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고..
* 들어가서 커피와 글을 써야겠다.김영하의 글은 뭔가 살고 싶어지게 해.큰 사거리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혼잣말을 되뇌였다. 들어가서 커피와 글을 써야겠다. 김영하의 글은 뭔가 살고 싶어지게 해.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이것은 너무나 안전한 달달함이다. 풋풋한 청춘의 키스처럼 달콤한 희망의 감각이다. 김영하의 글을 읽다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전쟁중이어도 달지근한 연애 시절의 희망이 소환되는 듯 하다. 솜씨 좋은 노포의 맛갈난 음식을 다 집어 삼키고 그것들이 뱃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달달한 내장 감을 느낀다. 건강한 맛이지만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은 설렘의 맛이 체내 유산균처럼 뱃속에서 스스로 생성되어 머무르는 것을 느낀다. 맨발이었다. 다른 곳에 잠깐 들러 다시 집에 들어와서 제대로..
올해 광주에 굵직한 경사가 많다. 문학계에서는 광주 출신 한강이 노벨 문학상을 받고, 야구계에서는 해태.. 아니 기아 타이거스가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다. 그러고보니 대한민국 국민이 받은 두 개의 노벨상 중 나머지 하나는 전라남도 신안 출신의 김대중이 받았다. 박정희,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은 경상북도, 전두환은 경상남도 출신이다. 찾아보니 22대 국회 경상도권 당선자의 86.2퍼센트가 국민의힘 소속이었다. 또 서울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구)가 국민의힘의 든든한 텃밭 지역이다. 경기권에서는 분당, 성남이 그렇다.또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단(장로교), 그 안에서도 가장 큰 두 교파(통합, 합동)를 대표하는 두 교회의 담임 목사(명성교회, 사랑의교회..
인디언들은 말을 더듬지 않는다. 그를 신기하게 여긴 학자들이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결론지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의 언어에는 ‘말더듬’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말을 더듬지 않는다. 프랑스에는 나방이 없다. 프랑스에는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는 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비든 나방이든 통칭해 papillon[papijɔ̃ 빠삐용: 나비, 나방 ; 경박한 사람, 변덕쟁이]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그러니까 맛있다와 맛없다란 맛 표현만 할 줄 아는 사람의 세계에는 세상의 다채로운 음식들이 다 맛있음과 맛없음으로 나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는 내게 맛보다 정서로서의 음식이었다. 나의 영혼의 고향은 떡볶이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그 첫번..
2023년 11월 9일에 작성함.“폴리에스테르 블라우스가 손짓했다.”짙은 회색의 둥근 챙이 달린 모자. 하얀 일회용 마스크. 목의 높이가 낮은, 얇은 자주색 목폴라 티를 속에 받혀 입고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폴리 블라우스를 위에 덧입으셨다. 그리고 모자가 달린 원색 빨간색의 잠바. 등산복 느낌의 폴리 소재 까만 바지. 그리고 안경을 안 써서 잘 못 보았지만 등산화 느낌의 운동화를 신으신 듯했다...1호선. 내가 선 자리 앞에 자리가 나자, 오른쪽 끝 좌석 쪽에 서 계셨던, 지긋한 노중년의 아저씨가 움직이려다가 나보고 앉으라고 손짓하신다. 나는 당연하게도, 괜찮다는 손짓으로 앉으시라고, 손바닥과 손목을 빈자리 쪽으로 열어 보이며 손짓했다.그 사이에 아저씨가 원래 서 계셨던 오른쪽 끝자리에 자리가 났고..
수능 날이다. 왜 그런지 수능 날만 되면 고삼 때로 되돌아간다. 새벽 내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거의 밤을 새다 시피 하고 꼭두새벽처럼 일어나 찬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그렇게 도봉구의 낯선 모 중학교에 갔던가. 그 날 아침의 공기가 생각난다. 그 긴장감과 냄새. 차가움, 그리고 뜨거움. 깜깜한 새벽에 몸을 일으켜 부지런히 준비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여느 등굣길처럼 빠듯했다. 헐레벌떡 뛰어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 상계역 부근의 미니스톱 앞에서 택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들이마시던 차고 쨍한 새벽 공기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뜨거운 몸에서 올라와 입으로 나오던 입김. 떨림. 열아홉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만 했던 극한의 공포감과, 다 끝났다는 슬픔과 안도감 같은 것. 겨우 택시를 세..
연기가 좋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석규 주연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하 이친배)를 보며 궁금해졌다. 연기에 대한 전공 지식이 전무한 내가 전문가의 식견에서 어떤 연기가 좋은 것인지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친배 속 남자 경장(프로파일러인 한석규의 소속 수사팀원으로, 한예리와 한 팀이었던 역할)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참 재미있다 그의 연기는 한마디로 참 재미있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다. 그럼에도 유독 나의 눈에 남자 경장 역이 남은 것은 그의 역할이 유난히 살아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한 역도 빠짐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연기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연기의 틀 안에서 이뤄지며 흘러갔다. 캐릭터의 흐름..
때는 바야흐로 2005년. 나는 뜻밖에 한 달의 여정으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 캠퍼스 선교 동아리에서 단기선교를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뜻깊었다. 가슴에 깊이 남은 것들이 정말 많다. 생의 지혜와 넓고 깊은 안목. 그처럼 보이지 않는 배움은 나를 어떤 식으로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했다. 보이지 않는 감동과는 다르게, 보고 느끼는 감각의 감동은 표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았다. 공기나 바람, 그곳의 풍경과 냄새 같은 것은 아무런 사유를 거치지 않아도 고스란히 어떤 것을 몸에 남겼다. 보고 느낌으로서 그대로 남은 것들. 음식은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열정, 자신감, 뜨거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은 바닷가에 엎질러버린 원자력 폐기물이나 뚜껑이 열린 드럼통에서 줄줄 쏟아져버린 ..
2020년 4월 22일 씀. 현혹된 하루살이가 너, 촛불을 향해 날아들어, 따닥따닥 불타면서도 하는 말, “이 불길을 축복하자!” 제 예쁜 여자 위에 몸을 기울이고 헐떡거리는 애인은 제 무덤을 어루만지는 다 죽어 가는 환자 같아라. 만일 네가, — 비로드 눈의 요정이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나의 유일한 여왕이여! — 세상을 덜 추악하게 하고, 순간순간을 덜 무겁게만 해 준다면? 보들레르, 중에서. 늦은 밤 지하철은 한가했다. 나는 Alexandre Tharaud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을 듣고 있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귀갓길이었다. 일호선 지하철 막차는 승객이 너무나 없었다. 내 양 옆자리도 모두 비어 있었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스..
배터리는 팔 프로밖에 없다. 나는 나의 방앗간에 있고, 하리보 젤리를 먹고 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힘든 날들을 보내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많은 비였다. 접이식 우산을 썼지만 바지 밑으로, 거의 치골 선 아래로는 다 젖었다. 엉덩이와 로퍼 안까지 축축해졌을 정도다. 김광민이 좋다. 역시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을 만큼 힘든 날이나, 비오는 날이나, 그 두가지가 겹친 날에는 김광민만한 것이 없다. https://open.spotify.com/track/5qs2kn2GzSlEc94bzmPTbW?si=hJqZBcH1QEG1W3QiIwxDUw Here`s That Rainy DayKim Kwang Min · Song · 2007open.spotify.com 좋은 소식 하나는 방에 에어콘을 달았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