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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 떡볶이집에서 튀김과 오뎅을 먹었고, 햄버거 가게에서 찬 콜라와 함께 감자 튀김과 새우 버거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내달려 카페로 향했다.
사인석 쇼파 자리에 자리를 잡고는, 다리를 꼬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신해철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했다. 그랬지.. 그랬지.. 그 애가 아이리쉬 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오늘처럼 찬 공기를 가르고 실내화를 신고 달려가 그 애를 만나기 전 남자 화장실에서 떨면서 외모를 점검하고 있었지.
문득 눈을 뜨니 한 아줌마가 바로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계셨다. 내 앞에 놓인 테이블은 깨끗했고, 나는 덩그러니 사인석 쇼파의 복도쪽 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바리스타 바에서는 브류잉 머신을 새로 세팅중이라 이제 막 커피를 내리기 시작하고 있을 터였다.
도심의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인기 많은 스타벅스였다. 일행 중 한 아주머니가 속으로 하는 생각이 소리치듯 크게 들렸다. 테이블 위에 아무것도 없고, 일행도 없고, 다른 테이블은 이렇게 편한 쇼파석도 아닌데. 자리 좀 비켜주지. 우회적인 눈총과 온몸의 몸짓으로 내 자리를 탐하는 듯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나는 춥게 돌아다니며 쌓인 피로감이 자작하게 누적되어 어떤 절정에 달하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것이 세상 귀찮았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으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 떠나가시겠지. 모른 척 눈을 감고 있을까 생각했다. 정말 피곤함이 몰려와서 어차피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내게 거의 없었다.
한 가지를 더 고발하자면, 아까는 진지하게 고심하며 고른 나의 사이렌 오더 주문을 직원이 임의로 취소시킨 일이 있었다. 아직 카페가 한창인 7시 35분 무렵이었는데. 벌써 브류잉 머신을 마감중이라며(?), 음료가 서브될 때까지 오래(나중에 보니 받기까지 고작 10분 정도가 걸리는 것이었다) 걸린다는 이유였다.
커피는 주문이 된 건지, 나를 부르는 소리인지 몇 번을 자리에 앉아 뒤돌아 보며 확인했는지. 그렇게 하염없이 커피를 기다리며 얼마 동안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른다. 뒤늦게 주문이 취소가 된 것을 보고 카운터에 가서 문의를 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오늘은 오늘의 커피가 마감된 건지 물어보니, 그건 아니라고, 시간이 좀 걸리지만 가능하다고 한다. 시간이 걸려도 괜찮다고 말하니, 그럼 다시 사이렌 오더로 주문해 달라고 한다. 쿨한 듯, 마음 넓은 나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라는 듯 알겠다고 했다.
맨발의 자전거로 여기저기를 누비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마음도 몸도 쌀쌀해졌다. 따끈하고 깔끔한 커피 한 잔이 너무나도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힘겨운 커피 한 잔의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저 에베레스트처럼 높은 벽이 아직도 쇼파 자리 옆에 서 있다.
정말 성가시고 귀찮았다. 바리스타도, 아줌마도 다들 제멋대로였다. 정당한 권리를 갖고 있는 타인의 평온을 아무렇지도 않게 깨며, 이렇게 불편하게 해도 되는 건가. 정말 도시에서는 작은 안식을 누리는 일이 어째서 이렇게도 어려운 걸까. 울긋불긋한 짜증이 났다.
언젠가 김영하 작가가 토크쇼에 나와서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는 공공장소에서 혼자 온 사람을 너무 존중하지 않는다고. 사연인즉 그가 혼자 기차에 올라타서 이제 막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소란스럽게 우르르 몰려 들어온 일행이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양 작가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말해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는 것이다.
아니, 내가 기차표 값을 덜 내기를 했어. 좌석을 그렇게 잡아달라고 디자인을 했어. 혼자 온 원죄밖에 없는데. 미안한 기색도 없이 왜 그렇게 당당히 다가와서 타인의 일상을 깨트리는지. 그와 같은 모종의 황당한 폭력 앞에서, 분을 삭여야 했던 일화를 말하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쪽수가 많으면 쪽수만큼 무리의 권리도 우세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의식 문화가 있다고. 일단의 무리가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개인의 평화쯤 아무렇지 않게 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무례한 일이라고.
아까부터 피곤이 몰려와 정말 휴식이 간절했던 차였다. 앉은 채로 잠깐 한 번 더 눈을 떠보니 두 명의 아줌마 일행이 내 바로 옆에서 아직도 그러고 계셨다.
헤드폰에서 신해철이 속삭였다. 왜 그러고 있어. 떳떳하지 못하게. 너가 뭘 잘못했다고. 당당해. 뭐뭐- 하는 척 하지 말고.
아직 단 한 번의 후우회해도- 느껴본 적은 없어— 힘겨운 시간은 왠지 천천히 흘러.
나는 그 즉시 눈을 뜨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애써 아줌마 일행과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거침없이 바리스타 바로 걸어 가서, 내가 주문한 음료가 나왔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는 아직도 그 자리 옆에서 마침내 눈엣가시 같은 4인 좌석의 1인 쇼파 독점 점유자가 일어나 나간 것인지(아직 작은 숄더백 하나가 덩그러니 내가 앉았던 옆 자리 쇼파 위에 올려져 있었다.) 몰라 차마 자리에 앉지는 못하고 계셨다. (이제 좀 가방을 들고 완전히 일어서 나가주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는 듯 했다.)
뚜벅뚜벅 다시 걸어 들어와 아주머니들에게는 어떤 시선도 주지 않고 처음부터 앉아 있던, 바로 그 자리에 태연한 척 앉았다. 그래도 짜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한 아주머니는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는 듯 했지만 아까부터 못마땅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듯하던 다른 한 아줌마는 여전히 내 쇼파 자리 옆에서 원망의 눈총을 보내면서 서성이고 있는 듯 했다. 다 느껴졌다.
피곤함에 자리에 앉아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굳이 왜 그랬을까. 옹졸한 마음으로 원래 앉아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겠다고, 이렇게 아득바득 아줌마들이 서 있는 바로 옆 자리에 앉을 필요는 없었는데. 돌아와 앉을 때는 바리스타 바에서 가장 가까운, 아줌마들과는 두 걸음이라도 멀리 떨어진 건너편 쇼파 자리에 앉았으면 그나마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을 텐데. 너무나 귀찮고 짜증이 났고, 나는 아무것도 저 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오기를 부리고 있는 티를 내며, 나를 보여준 것이 된 것 같아, 그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이 모든 것이 다 짜증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