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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1

newwing 2024. 12. 18. 22:59

* 들어가서 커피와 글을 써야겠다.
김영하의 글은 뭔가 살고 싶어지게 해.





큰 사거리의 신호등을 기다리며 혼잣말을 되뇌였다. 들어가서 커피와 글을 써야겠다. 김영하의 글은 뭔가 살고 싶어지게 해. 속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생각했다. 이것은 너무나 안전한 달달함이다. 풋풋한 청춘의 키스처럼 달콤한 희망의 감각이다.

김영하의 글을 읽다보면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전쟁중이어도 달지근한 연애 시절의 희망이 소환되는 듯 하다. 솜씨 좋은 노포의 맛갈난 음식을 다 집어 삼키고 그것들이 뱃속에 머무르고 있을 때의 달달한 내장 감을 느낀다. 건강한 맛이지만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은 설렘의 맛이 체내 유산균처럼 뱃속에서 스스로 생성되어 머무르는 것을 느낀다.
  
맨발이었다. 다른 곳에 잠깐 들러 다시 집에 들어와서 제대로 짐을 챙겨서 나가려는 생각으로 텀블러도 책도 아무것도 없이, 그대로 작은 숄더백 하나만 메고 나왔다.

그리고는 왜인지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대로 포장마차 떡볶이집으로-햄버거 가게로-카페로-서점으로 내달렸다.

충전기도 텀블러도 없었다. 휴대폰 배터리는 17 프로 정도 남은 상태였다. 곧 배터리도 다 닳아 버렸다. 커피와 책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오징어 튀김과 야채 튀김과 꼬불이 오뎅꼬치와 오뎅 국물에, 간장에 담긴 파에, 감자 튀김과 탄산이 터지는 콜라에, 새우 버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 반 동안 서점에서 책만 보았다. 사장님이 끓여주는 라면만 없을 뿐이었지 고등학교때 야간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만화방에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도파민 파티의 심산이었다.  
  
바지의 끝단과 갈색 소가죽 구두 사이로 복숭아뼈와 발목이 횅하게 드러나는 맨 발. 겨울의 찬 공기에서 나는 달큼한 온천 가스 같은 냄새를 맡으며, 물찬 제비처럼 자전거를 굴러 집으로 내달렸다. 아직도 나는 팽팽하게 젊었다. 차가운 겨울날에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젊었다.

나이가 들면서 멀티 태스킹 능력이 현저히 줄었고, 한 가지에 몰입하며 그것의 풍부함을 느끼는 능력은 놀랍게 늘었다. 집중의 해상도가 확연히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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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를 내려서 마시고 글을 써야겠다. 그 두 가지에만 몰입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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