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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2005년. 나는 뜻밖에 한 달의 여정으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 캠퍼스 선교 동아리에서 단기선교를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뜻깊었다. 가슴에 깊이 남은 것들이 정말 많다. 생의 지혜와 넓고 깊은 안목. 그처럼 보이지 않는 배움은 나를 어떤 식으로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했다.
보이지 않는 감동과는 다르게, 보고 느끼는 감각의 감동은 표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았다. 공기나 바람, 그곳의 풍경과 냄새 같은 것은 아무런 사유를 거치지 않아도 고스란히 어떤 것을 몸에 남겼다.
보고 느낌으로서 그대로 남은 것들. 음식은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열정, 자신감, 뜨거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은 바닷가에 엎질러버린 원자력 폐기물이나 뚜껑이 열린 드럼통에서 줄줄 쏟아져버린 기름처럼 내 영혼에 이염되더니, 아주 오랫동안 쉽게 정화되지 않았다. 특히 음식들이 그랬다. 이른 아침에 유스호스텔의 지하에 있는 구내 식당에서 코르타도나 카페콘레체 같은 현지식의 진한 커피와 신선한 빵을 함께 먹었던 기억. 대학 식당에서 먹었던 푸짐한 학식들의 기억. ‘입천장이 까지도록 와그작’ 씹어먹던 바게트 샌드위치 체인점. 해변의 풍경이 붉게 불드는 매직 아워에 하얀 탁자보가 덮인 야외 테이블에서 먹었던 생선 구이와, 레몬 슬라이스를 한 조각 넣은 상큼달콤한 스페인식의 신선한 콜라.
그리고 빠에야. 빠에야는 평양냉면처럼 왜 자꾸 그렇게 생각나는지. 한국에 와서도 스페인의 풍성함을 떠올릴 때면 빠에야가 그렇게 생각나곤 햤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주로 목사님이나 교회 성도님들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함께 식사를 하곤 했다. 스페인은 정말 뜨겁고 정겹고 친절한 곳이었다. 당시에도 한국 사람들은 가족 안에서의 분열이 일상적인 이야기였고, 외부인을 집에 초대해서 온 가족이 환대하는 일도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스페인은 달랐다(물론 교회 사람들이 좀 달랐을 수는 있다.). 우리는 마치 예수님의 열두 제자처럼 현지인과 한국인 이주민들의 가정에 초대를 받아 극진한 대접을 받곤 했다.
우리가 경험한 스페인의 가족들은 죄다 애틋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그 중 한두 가정은 실감이 안 날 정도로 화목했다. 특히 저녁 식사에 초대를 받으면, 상다리가 뿌러지도록 차린 식탁 위에 앉아 두어 시간씩 저녁을 먹곤 했다. 빠에야는 그 중에 그리 인상적인 음식이 아니었다. 적어도 당시에는 우리와 함께 다녔던 이민 2세 자매의 아버님이 직접 숯불 같은데서 구워주는 스테이크 고기나, 스페인 사람들이 즐겨먹는 빵이나, 이름도 정체도 알지 못하는 음식들에 포크가 먼저 갔다.
빠에야는 볶음밥이라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20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이상 한국에서도 흔히 맛볼 수 있는 것에는 포크질을 하지 말자는 성문법 같은 것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중국음식을 시키면 탕수육에 몰두하고 볶음밥이나 짜장면은 탕수육을 거드는 정도로 먹던 것들이 아니었던가. 별다를 것 없는 해물 볶음밥이 너무 한복판에 있어 그것을 피해 진기명기한 음식들을 접시에 집어오기 바빴던 나날들.
다른 팀원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다들 빠에야에는 손을 최소화하여 대는 눈치였다. 손수 음식을 준비해준 집사님의 손길을 의식하신 것인지, 그런 우리 마음을 아신 것처럼 팀장님이 슬쩍 세일즈를 하셨다. '얘들아.. 빠에야가 스페인 정통 음식인데.. 한국에서는 맛보기 힘든 음식이야. 이거 한번 만드는 데 정성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냐면..'
입은 분주하게 천국의 맛을 내는 음식들을 씹어대면서 가만히 귀만 열어 설명을 듣던 우리는 팀장님의 말에 설득되고 말았다. 한 숟가락 한 숟가락 빠에야를 퍼먹으면서 우리는.. 중국집 볶음밥과는 다른 그 미묘한 맛의 차이에 점점 매료되어 갔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풍성하고 감칠맛 나는 맛이었다. 어느덧 빠에야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들 말없이 경쟁적으로 빠에야를 퍼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뱃속까지 맛있던 빠에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내 생의 빠에야는. 한국에 와서도 몇 번인가 강남 등지의 식당에서 빠에야를 먹었지만 한 번도 그 맛을 내는 집을 본 적은 없었다. 팀장님의 말처럼 그 빠에야는 정말 스페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따금 힘들 때마다 가끔씩 빠에야가 생각났다. 스페인의 가정집에서 먹었던 그... 가정식 빠에야가. 생은 너무 고통스러웠고 스페인에서의 날들과 나의 빠에야는 달콤한 꿈결 같았다.
To be continued.
함께 들을 스포티파이 추천 BGM :
https://open.spotify.com/playlist/4wbEGnSptb49UxBGJliLOa?si=kXpZVZx7Qy2cOIz2XZN8Ag%26pi=a-fM4QX_jCQIKK
박찬일 셰프의 빠에야에 대한 기고 글 :
http://www.mkhealth.co.kr/news/articleView.html?idxno=5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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