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5년. 나는 뜻밖에 한 달의 여정으로 스페인에 가게 된다. 캠퍼스 선교 동아리에서 단기선교를 가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의 하루하루가 정말 뜻깊었다. 가슴에 깊이 남은 것들이 정말 많다. 생의 지혜와 넓고 깊은 안목. 그처럼 보이지 않는 배움은 나를 어떤 식으로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게 했다. 보이지 않는 감동과는 다르게, 보고 느끼는 감각의 감동은 표현하기 어려운 것으로 남았다. 공기나 바람, 그곳의 풍경과 냄새 같은 것은 아무런 사유를 거치지 않아도 고스란히 어떤 것을 몸에 남겼다. 보고 느낌으로서 그대로 남은 것들. 음식은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열정, 자신감, 뜨거움, 사랑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은 바닷가에 엎질러버린 원자력 폐기물이나 뚜껑이 열린 드럼통에서 줄줄 쏟아져버린 ..
2020년 4월 22일 씀. 현혹된 하루살이가 너, 촛불을 향해 날아들어, 따닥따닥 불타면서도 하는 말, “이 불길을 축복하자!” 제 예쁜 여자 위에 몸을 기울이고 헐떡거리는 애인은 제 무덤을 어루만지는 다 죽어 가는 환자 같아라. 만일 네가, — 비로드 눈의 요정이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나의 유일한 여왕이여! — 세상을 덜 추악하게 하고, 순간순간을 덜 무겁게만 해 준다면? 보들레르, 중에서. 늦은 밤 지하철은 한가했다. 나는 Alexandre Tharaud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을 듣고 있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귀갓길이었다. 일호선 지하철 막차는 승객이 너무나 없었다. 내 양 옆자리도 모두 비어 있었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