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순간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너무나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다. 옛날에.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누군가와 헤어진 지 이제 몇 달 차가 되었던 어느 새벽. 그날들은, 왜 그랬는지. 그 사람과 자주 만나던 동네를 어물쩡거리다가 이제 집에 지하철을 타려면 발걸음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였다. 하지만 어쩌다 막차도 놓치고, 버스도 놓쳤다. 남은 건 새벽 심야 버스 뿐이었는데, 왜인지 그냥 새벽을 그 지역에서 새고 동이 트면 지하철을 타고 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야 버스가 너무 많은 정거장을 거쳐가야 했기에 힘든 버스에 몸을 싣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날은 그냥 좀 여유를 갖고 카페 같은 곳에서 쉬다가 집에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기억나는 것은 너..
앵콜요청만 금지가 아니라 유튜브도 금지다. 라고 말하고 하루에 두 시간은 족히 본다. 시사 평론은 그래도 좀 봐야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다느니 클래식 상식은 교양을 쌓는 일이며 쉼에도 도움이 된다느니. 합리적인 이유는 늘 있었다. 인문학이나 커피, 음악, 요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관심이 많은 그.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숏폼이라고 불리는 짧은 영상은 거의 안 본다는 것. 오늘은 자고 일어나자마자 영롱하고 맑은 아침에 머리 맡의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집어 들었다. 특히 한 작가의 소설을 그렇게 읽어보고 싶었다. 그는 젠더 소설가로 알고 있는데.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무엇이든 남김없이 핥아 보고 싶었다. 구강기 아이처럼 무엇이든 집어서 다 혀에 대보고 싶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위험하..
1 1호선. 지하철은 종로3가역을 지나 종각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릴까 말까. 안경 매장에 들를까 말까. 안경을 샀던 교보문고 안의 매장에 가려면 도래하는 역에서 내려야 했다. 오후녘, 오늘은 해야지. 일어나야지. 작은 옥탑방을 나서며 분기탱천했던 나였다. 이 정도로 기분 좋게 의욕적인 상태가 된 것이 실로 몇 달만이었던지. 그렇게 의욕적이 된 결과 나는 무려 세 개의 안경을 가방 안에 넣어 가져왔다. 어딘지 다 비뚫어지고 문제가 생긴 안경들이었다. 자연적으로 헐거워졌거나 밟았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제각각 헐렁해지고 틀어진 테들. 오늘은 그들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는 가방에 넣어온 것이었다. 이제 미루지 말자. 닥치는 대로 하자. 앞으로 좀 가자. 나도, 앞으로. - 하고 생각하며 아이스..
中 수학대회서 명문대생·AI 제친 직업고교생..."천부적 재능" 2024.06.17 오후 01:56 중국의 한 수학경시대회에서 한 직업고등학교 학생이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중국 베이징대·칭화대 등 명문대 출신들과 나란히 결선에 진출해 화제가 되고 있다. 17일 중국신문주간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중국 동부 장쑤성 롄수이중등직업전문학교(中專)에 재학중인 여학생 장핑(姜萍·17)은 지난 13일 정보기술(IT)기업 알리바바(阿里巴巴)가 개최한 글로벌 수학경시대회 예선에서 93점(결선 진출자 801명 중 12위)을 받아 결선에 진출했다. 이번 대회 결선 진출자는 17개 국가·지역에서 온 총 801명으로 평균 연령은 22세였다. 결선 진출자 상위 30명 명단에서는 케임브리지대와 MI..
오늘처럼 무더운 날이었다. 더욱이 열일곱, 뜨거운 날들의 여름은 더 무더웠을 것이다. 기억이 나는 건 온몸의 수분과 독이 다 땀으로 나오고, 진이 다 빠질 정도로 뜨거웠던 몸과, 반팔 티. 그리고 차갑고 고소했던 냉면. 그날 나는 친구들과 학교에서 죽을 듯이 농구를 했다. 태양과 헥헥거림. 땀과 기분 좋은 탈진. 여름. 그것들과의 대비로써 조그만집의 냉면은 천국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갔는지, 버스를 타고 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하철로는 한 번을 갈아타서 총 세 정거장이고, 버스로 가도 이십 분이면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그날 이전까지 나는 그곳을 전혀 몰랐다. 같이 농구한 친구들 중 누군가 가자고 해서 따라간 것이었다. 막상 도착해 보니 이름처럼 작은 분식집이었다. 이렇게 작은 분..
뜬금없이 시작하기 글 속으로 뛰어들기에 적절한 곳, 안전한 곳은 없다. 로저 로젠블랫은 글쓰기 수업에서 강의하다 뜬금없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학생들은 정신 나간 사람을 보듯 그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는 다시 한번 그 노래를 부른 다음, 머릿속에서 "평생 들어온 이 지긋지긋한 축하곡"이 울리는 가운데 글을 시작해 보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그가 또 한 번 노래를 부르면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글을 쓰기 시작한다. ... 그러나 출발점이 언제나 분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입구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옆문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 애비게일 토머스 '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7페이지. Joseph Banowetz가 연주한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를 듣는다. 그제..
우리 반에서 괜찮은 애는 두 명이야. 1등은 재현이고, 2등은 너야. 재현이, 너무 하얗고 귀엽게 생겼지 않았어? 너는.... 이후의 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아예 나를 언급하지 않았었을 지도 모른다. 열한 살의 일을 성인이 두 번은 되고도 남은 나이에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만 나에게는 아직도 열한 살의 소년이 그대로 있고. 그 소년이 2위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던 기억을 만들어 내지 않았으리란 자신은 없다. 손소정. 입술 바로 위 오른쪽 인중에 까만 점이 있었다. 그 점이 열한 살이 보기에도 광장히 개성있고 예뻐 보였다. 소정이는 정말 잊히지 않을 만큼 까맣게 예뻤다. 지금은 그 애가 까만 점으로 남아있다. 나의 뇌하수체 어딘가에서, 그냥 까만 점으로. 별명은 마돈나였던가..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일 수 있다. 두려워서거나 사랑해서. 두려워서 열심히 할 땐 결과가 중요하고, 사랑해서일 땐 과정이 중요하다. 두려워서일 땐 되는 것이, 사랑해서일 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두려워서 열심히 하려는 사람에게는 쫓기듯 촘촘하게 노심초사 ‘어떻게’가(어떻게 하면 그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그에겐 언제나 doing이 관건이다. 하지만 사랑할 땐 ‘왜’ 또는 ‘무엇’이 중요해진다. 왜 그것을 하려 하는가, 내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해진다. 그래서 그에겐 너무나 자연스럽게 Being이 중요하다. 두려움은 말하고 싶어하지만 사랑은 듣고 싶어한다. 두려움은 설복시키기를 원하지만 사랑은 오히려 능청스럽게 져주기를 기뻐한다. 두려움은 소유해야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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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21. #1 “여기서 어느 길로 가야되는지 말해주겠니. 그거야 네가 어디 가고 싶으냐에 따라 다르지. 어디든 별로 상관없는데. 그럼 어디로 가든 상관없겠네. 어딘가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그렇지. 아, 멀리 걸어가기만 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될거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중에서. “멀리까지 걸어가면 언젠가는 어딘가에 도착할 거야. 확실해.” - 오즈의 마법사 중에서. #2 어느 여행산문집이 시작되는 빈 페이지에 차례로 쓰인 글이다. 원래 난 목표에 집중했던 사람이었다. 존재보다 기능에 집중했고 효율의 극대화를 추구했다. 여자 친구들과 있으면 아무래도 자잘한 교제의 말들을 주고 받게 되지만, 남자 친구들과 있을 때는 공연히 에너지만 낭비하는 것이 너무 싫어 쓸데 없는 말은 거의 하지 않는 과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