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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에서 괜찮은 애는 두 명이야. 1등은 재현이고, 2등은 너야. 재현이, 너무 하얗고 귀엽게 생겼지 않았어? 너는....
이후의 말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아예 나를 언급하지 않았었을 지도 모른다. 열한 살의 일을 성인이 두 번은 되고도 남은 나이에 정확하게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다만 나에게는 아직도 열한 살의 소년이 그대로 있고. 그 소년이 2위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던 기억을 만들어 내지 않았으리란 자신은 없다.
손소정.
입술 바로 위 오른쪽 인중에 까만 점이 있었다. 그 점이 열한 살이 보기에도 광장히 개성있고 예뻐 보였다.
소정이는 정말 잊히지 않을 만큼 까맣게 예뻤다.
지금은 그 애가 까만 점으로 남아있다. 나의 뇌하수체 어딘가에서, 그냥 까만 점으로.
별명은 마돈나였던가. 우리가 소정이를 그렇게 부른 것은 물론 입술 위의 마돈나 점 때문이겠지만, 정말 마돈나 같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는 남자애들은 쑥맥이고 여자애들이 대범하고 적극적인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그런 면에서 소정이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적극적인 애였다. 그날들의 우리가 섹시함 같은 것이 무엇인지 알 리는 없었고 아예 그런 단어조차 몰랐지만, 소정이가 어딘지 마돈나 같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었다. 소정이는 분명 마돈나와 줄기세포나 염색체 따위의 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열한 살에게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서 결국 쓰고 말자면 요염했다. 소정이는 그때, 전국에 있는 열한 살 중에 가장 요염하고 매혹적인 애였을 것이다. 나는 그때 물컹 내려앉던 심장의 느낌을 놀랍게도 지금도 고스란히 기억한다.
진보의 끝에 있던 마돈나가 그날 내게 태연하게 말하던 순간을-
재현이는 젠틀하면서도 귀여워. 남자애가 어쩌면 저렇게 살이 뽀얄 수가 있어. 안경도 너무 잘 어울리고. 우리 반에서 재현이가 단연코 1등이야.
2등은? 2등은 누구야?
2등은 너. 너가 두번째로 멋있어. 1등은 재현이고.
그 애는 그렇게 놀라운 말들을 교실 삼분단 뒤에서 1/3지점 즈음 자리, 나의 바로 앞자리에서 뒤돌아 보며 비밀스럽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속삭였고, 나는 숨이 막혔다. 열한 살 길고 긴 생애 처음으로 질투심이 어떤 감정인지를 알 수 있었다. 소정이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재현이가 부러웠다. 재현이네 아파트 집에 들어가서 아이큐 이천도 구경하고 같이 게임도 하고 놀았지만. 쑥맥 같고 허여멀건한 재현이의 어떤 점이 나보다 더 멋있는지, 나는 전혀 찾지 못하고 세련된 주공 아파트를 나섰다.
그래도 괜찮았다. 반에서 제일 인기가 많았던 애가 선명하고 구구절절한 문학적 고백의 편지를 내 책상 위에 올려 놨었고, 나도 이미 그 애를 좋아하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때였다. 그뿐 아니라 기타등등 나를 좋아하는 여자애들이 이미 다수일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끼고 있던, 정말 충만하던 때였다.
신비로운 것은 내 안에서 요동하던 두려움이란 감정이었다. 나는 소정이가 두려웠다. 풍요로운 자존감 속에도, 소정이의 짙은 검은색의 매력은 두려움마저 느껴질 만큼 열한 살의 나에게 매혹적이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또한 검은색 질투심을 유발했다.
그랬던 순간을, 소정이를 모티브로 하는 글을 언젠가 꼭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나에게 숙제처럼 남아있다.
소정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에필로그)
소정이 때문인지 시간이 한참 지나, 한참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들 앞에서 심장이 내려 않곤 했다.
https://open.spotify.com/playlist/3pCoUvI9K4LRF8bQiuK5Q6?si=kVrIEjMGTfGPZOq4ItTs9g%26pi=a-tPOT2j4JSe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