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감하지 못한다고 독특성을 가진 타인의 감정을 비꼬고 조롱하는 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다. 한국에 오게 된 중국 판다곰의 스토리를 일체 팔로우업하지 못했다. 당연히 전혀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감히 비웃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영상에 따라붙는 댓글들을 살폈다. 그런데 하나같이 현장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주욱 내려 읽어가면서 내가 본 것은 군중의 폭력성이었다. 슬퍼할 만할 때만 슬퍼하라 그리고나서 내 마음을 살폈는데. 한낱 미물이라 여겨지는 곰을 향해 슬퍼하는 저토록 낯선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았다. 비웃음. 조소. 하나의 일사분란한 평가. 단박에 조지 오웰의 1984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댓글들에 공감되기도 하..
“아들과 티를 마시며 조용히(quietly) 축하하려고 해요.” * 이 글은 에너지가 부족해서 쓰다가 말았어요 ㅠ 수일 내로 이어 써 볼게요. 1. 한강 작가의 ‘흰’을 가방에 넣고 맥도날드에 왔다. 작가의 책들이 몇 권 내게도 있다. 하지만 어딘가에 파묻혀 있어 도저히 찾아 읽을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화장대에 앉아 눈으로 한 바퀴 쓱 돌아보고 안 보이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안경을 쓰고 왼쪽에서부터 돌아보려는데 놀랍게도 바로 정면 책장에 보란 듯이 꼽여 있는 그녀의 책이 보였다. 아마도 유일할 그녀의 하얀 책, 흰이었다. 노란 맥도날드에 앉아 흰을 펼쳐보았다. 첫 페이지가 이렇게 시작한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한 칸 띄고, 세로..
가을이다. 글쓰기가 참 어렵다. 중의적인 표현인데. 분주한 시간 속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도 너무 어렵고,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다.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서 그의 속으로 들어가기도 어렵다. 다정하게 마주 앉아 서로 오늘의 감정을 긁어내기도, 영혼의 무늬를 더듬어가며 그것의 핵심을 짚어내는 일도 어렵다. . 이천이십사 년 가을 시월 십오 일 한 시 이 분. 지금 이 순간을 또박또박 새겨본다. 이렇게 발화하는 동안도 시간은 사라진다. 아끼는 컵 받침이 깨졌다. 전자기기 안의 긴 화면이 유혹한다. 가짜들은 나에게서 진짜가 아니라 하나도 의미 없는 호기심이나 욕망만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어렸을 적 티브이 화면은 따듯하게 옆으로 뉘인 ..
네이버에 김지혜를 쳐봤다. 개그맨 김지혜. 영화배우 김지혜. 가수 김지혜. 스타일리스트 김지혜. 연극배우 김지혜. 드라마작가 김지혜. 전 리포터 김지혜. 의사 김지혜. 영화감독 김지혜가 나왔다. 널 어떻게 찾아..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지혜는 나의 첫사랑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하면 HJ가 있었고, 초등학교 때까지라면 또 다른 JH가 있었다. 하지만 지혜가 나의 실제적이자 상징적인 첫사랑인 것은 분명하다. 명색이 스무살의 여자친구였으니까. 스무살 때 하는 모든 것은 처음이 된다. 스무살의 키스가 첫키스였다. 고등학교 때도 했지만 그건 스무살 때가 아니었으니까 첫 키스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도 여자친구를 만나 보았지만 그건 스무살 때 만난 것이 아니니까 첫사랑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도 ..
9시 58분. 알라딘 잠실새내역 점에 도착했다. 뛰고 헤메고 지나치기까지 하면서. 마침내 그곳에 입성하기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마감 시간의 당당한 입장의 기세에 두 명의 여직원이 깜짝 놀란다. 그중 배테랑 직원처럼 보이는 한 여직원이 마중 나오듯 다가오며 운을 뗀다. 저희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다 끝났다는 말을 하려는 줄 알고 포기하려고 했더니. 사시려는 책이 있으면 찾아 준다고 한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스튜어트 켈스의 와 한길사 대표인 김언호의 을 말씀드렸다. 여직원은 곧바로 검색 피씨 앞에 다가가 능숙한 손길로 검색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사라져 더 라이브러리를 먼저 찾아왔다. 나머지 한 권을 찾는 동안 책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 보고 있으라는 것이다(그 바쁜 와중에도 한 번에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