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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피
수능 날이다. 왜 그런지 수능 날만 되면 고삼 때로 되돌아간다. 새벽 내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 거의 밤을 새다 시피 하고 꼭두새벽처럼 일어나 찬 바람을 가르며 달려나가 택시를 잡아 탔다. 그렇게 도봉구의 낯선 모 중학교에 갔던가. 그 날 아침의 공기가 생각난다. 그 긴장감과 냄새. 차가움, 그리고 뜨거움. 깜깜한 새벽에 몸을 일으켜 부지런히 준비했는데도, 이상하게도 여느 등굣길처럼 빠듯했다. 헐레벌떡 뛰어가 지금도 그대로 있는 상계역 부근의 미니스톱 앞에서 택시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들이마시던 차고 쨍한 새벽 공기가 그렇게 생각이 난다. 뜨거운 몸에서 올라와 입으로 나오던 입김. 떨림. 열아홉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기만 했던 극한의 공포감과, 다 끝났다는 슬픔과 안도감 같은 것. 겨우 택시를 세..
연기가 좋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한석규 주연의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이하 이친배)를 보며 궁금해졌다. 연기에 대한 전공 지식이 전무한 내가 전문가의 식견에서 어떤 연기가 좋은 것인지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이친배 속 남자 경장(프로파일러인 한석규의 소속 수사팀원으로, 한예리와 한 팀이었던 역할) 역할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분명했다. 참 재미있다 그의 연기는 한마디로 참 재미있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다 좋았다. 그럼에도 유독 나의 눈에 남자 경장 역이 남은 것은 그의 역할이 유난히 살아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한 역도 빠짐없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하는 연기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정해진 연기의 틀 안에서 이뤄지며 흘러갔다. 캐릭터의 흐름..
내가 공감하지 못한다고 독특성을 가진 타인의 감정을 비꼬고 조롱하는 것은 인간의 악한 본성이다. 한국에 오게 된 중국 판다곰의 스토리를 일체 팔로우업하지 못했다. 당연히 전혀 공감하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감히 비웃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영상에 따라붙는 댓글들을 살폈다. 그런데 하나같이 현장에서 슬퍼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댓글을 주욱 내려 읽어가면서 내가 본 것은 군중의 폭력성이었다. 슬퍼할 만할 때만 슬퍼하라그리고나서 내 마음을 살폈는데. 한낱 미물이라 여겨지는 곰을 향해 슬퍼하는 저토록 낯선 풍경을 바라보면서,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았다. 비웃음. 조소. 하나의 일사분란한 평가. 조지 오웰의 1984 속의,일사분란하게 제한된 감정만을 공유하는 군중들이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