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글쓰기가 참 어렵다. 중의적인 표현인데. 분주한 시간 속에서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 자체도 너무 어렵고,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글을 쓰는 일은 사람을 만나는 일과 같다. 약속을 잡고 만나기도 어렵고, 만나서 그의 속으로 들어가기도 어렵다. 다정하게 마주 앉아 서로 오늘의 감정을 긁어내기도, 영혼의 무늬를 더듬어가며 그것의 핵심을 짚어내는 일도 어렵다. . 이천이십사 년 가을 시월 십오 일 한 시 이 분. 지금 이 순간을 또박또박 새겨본다. 이렇게 발화하는 동안도 시간은 사라진다. 아끼는 컵 받침이 깨졌다. 전자기기 안의 긴 화면이 유혹한다. 가짜들은 나에게서 진짜가 아니라 하나도 의미 없는 호기심이나 욕망만을 끄집어 내려고 한다. 어렸을 적 티브이 화면은 따듯하게 옆으로 뉘인 ..
네이버에 김지혜를 쳐봤다. 개그맨 김지혜. 영화배우 김지혜. 가수 김지혜. 스타일리스트 김지혜. 연극배우 김지혜. 드라마작가 김지혜. 전 리포터 김지혜. 의사 김지혜. 영화감독 김지혜가 나왔다. 널 어떻게 찾아.. 나지막이 혼잣말을 했다. 지혜는 나의 첫사랑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하면 HJ가 있었고, 초등학교 때까지라면 또 다른 JH가 있었다. 하지만 지혜가 나의 실제적이자 상징적인 첫사랑인 것은 분명하다. 명색이 스무살의 여자친구였으니까. 스무살 때 하는 모든 것은 처음이 된다. 스무살의 키스가 첫키스였다. 고등학교 때도 했지만 그건 스무살 때가 아니었으니까 첫 키스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도 여자친구를 만나 보았지만 그건 스무살 때 만난 것이 아니니까 첫사랑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나 고등학교 때도 ..
9시 58분. 알라딘 잠실새내역 점에 도착했다. 뛰고 헤메고 지나치기까지 하면서. 마침내 그곳에 입성하기까지 거의 한 시간이 걸렸다. 마감 시간의 당당한 입장의 기세에 두 명의 여직원이 깜짝 놀란다. 그중 배테랑 직원처럼 보이는 한 여직원이 마중 나오듯 다가오며 운을 뗀다. 저희가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서... 다 끝났다는 말을 하려는 줄 알고 포기하려고 했더니. 사시려는 책이 있으면 찾아 준다고 한다. 미리 검색해 두었던 스튜어트 켈스의 와 한길사 대표인 김언호의 을 말씀드렸다. 여직원은 곧바로 검색 피씨 앞에 다가가 능숙한 손길로 검색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사라져 더 라이브러리를 먼저 찾아왔다. 나머지 한 권을 찾는 동안 책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해 보고 있으라는 것이다(그 바쁜 와중에도 한 번에 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