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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가 투박하게 일컬어 신앙이라 부르는 ‘믿음’ 안에 신념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넉넉히 감지하고 있었다. 신앙의 내용이 실은 ‘신념’과 ‘신앙’으로 구분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신앙이 창조자Creator를 앙모하는 마음이라면, 신념은 창조자의 영역을 넘보는 교만한 인간에 의해 창조된 것creation일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첫번째로는 내 안에서, 그리고 두번째로는 나와 동질성을 갖고 있는 내 밖의 사람들에게서 너무나 흔하게 느낄 수 있는 주제였고, 나는 그것의 구별에 엄격하고 보수적이고 겸손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전적 정의로서의 믿음은 신앙과 신념 두 가지를 포괄한다. 그러던 중 우연하고 감사하게도 기독교학 강의를 듣거나 현대신학 문헌을 읽어나가는 스터디 모임에 참여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나의 시야를 넓혀 나 자신과 주변 신앙인들에 대해 관대하게 하기도, 엄격하게 하는 지성적 경험이 되어 나름의 이해의 시각을 확보해 주었다.
그리고 굳이 ‘종교란 신에 대한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는 슐라이어마허의 정의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 안에는 자신이 스스로 비판하는 자유주의적인(자의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신앙적 기질이 본성적으로 다분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어쩌면 끊임없이 공부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엉뚱한 방향으로 멀리 달아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과 경험들은 정통적인Authentic 기독교가 걸어온 발자취와, 세계, 특히 유럽 스탠다드에서의 주류main stream 신학이란 과연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으며 고민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이라 불리는 것의 실체적 내용이 신앙인이 배척해야 할 ‘나쁜’신학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지, 그래도 되는지와는 별개로(실은 우리는 자유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책 한 권 읽지도 않았으니까.), 나와 우리는 칼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계시‘ 신학과도 월터 브루그만이 말하는 ‘예언자적 상상력’과도 대척점에 서 있으면서, 늘상 자유주의적(네 감정과 내 확신이 중요한, 내 맘대로 믿는)이어 왔다.
이토록 나름대로 일관적인 것이었던 경험 속에서, 그러니까, 신앙과 구별되는 신념이란 인간 욕망human desire의 또다른 표현이리라 느끼게 되고 있었는데. 노벨문학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과 더불어 국민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굉장히 드라마틱하게 그 주제가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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