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아세로라

newwing 2024. 8. 19. 14:44

2020년 4월 22일 씀.


현혹된 하루살이가 너, 촛불을 향해 날아들어, 따닥따닥 불타면서도 하는 말, “이 불길을 축복하자!”
제 예쁜 여자 위에 몸을 기울이고 헐떡거리는 애인은 제 무덤을 어루만지는 다 죽어 가는 환자 같아라.
만일 네가, — 비로드 눈의 요정이여, 율동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나의 유일한 여왕이여! — 세상을 덜 추악하게 하고, 순간순간을 덜 무겁게만 해 준다면?

보들레르, <악의 꽃> 중에서.




늦은 밤 지하철은 한가했다. 나는 Alexandre Tharaud가 연주하는 슈베르트 즉흥곡 3번을 듣고 있었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귀갓길이었다. 일호선 지하철 막차는 승객이 너무나 없었다. 내 양 옆자리도 모두 비어 있었다. 듬성듬성 앉아있는 승객들은,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스마트폰에 몰두하고 있었다. 적막하고 지루했다. 아무 파문도 없었다.

나도 다른 승객들처럼 스마트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와이파이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대면서. 세상과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 나의 현실처럼, 연결이 안 되는 와이파이 신호에 집착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검은 옷차림의 여자가 옆에 잠깐 머물러 서는 것이 느껴지더니 이내 나의 왼쪽 빈자리에 앉았다. 잠깐 머물러 서 있는 동안 나를 흘깃 보고 앉는 것 같다고 느꼈다. 빈자리의 폭이 약간 좁았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한 여자는 자리의 삼분의 이 정도까지만 조금 귀여운 느낌으로 밀고 들어와 앉았다.


https://open.spotify.com/track/3cTX97kSfqIs9U68fOjIEB?si=rmFconVOQ_uOjKx-DZeH_g&context=spotify%3Aalbum%3A3z8nvPaAh2debv4tOLzFT4

Schubert: 4 Impromptus, Op. 90, D. 899: No. 3 in G-Flat Major

Song · Franz Schubert, Alexandre Tharaud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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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그녀는 여느 승객들처럼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치 공원 벤치에 잠시 걸터앉아 쉬는 것처럼. 어딘가 맥이 풀린 느낌으로 앉아있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속으로 리듬을 타는 듯 보이기도 했다. 두세 정거장 정도 지날 동안이었을까. 그녀는 계속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맞은편의 까만 유리창을 바라보다 한두번 정도인가, 힐끔힐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느껴기도 했다. 어딘지 몸에서 작고 앙증맞은 나사 하나가 풀린 사람 같았다. 처음부터 그녀의 이런 제스처는 지극히 평범한 승객인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불온한 흔들림이었다. 내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 답답한 파문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다리를 앞으로 쭉 펴고는 왼쪽 다리를 오른쪽 다리 위에 포개어 놓고 있었다. 나름의 배려 같은 것이었다. 자리가 그렇게 넓지 않아 허벅지가 서로 닿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나만 혼자 소년 같았다. 나보다 한참 더 어릴 것 같은 그녀가 왠지 더 어른 같았다. 무심하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 얇은 판타롱 소재의 통 넓은 검은색 바지, 짙게 칠해진 속눈썹. 바깥쪽 소매에서 팔뚝 윗부분까지 금속 자크가 재봉돼 있는 가죽 재킷. 분위기가 꽤 멋스러웠다. 이토록 불편한 검은색이 세상에 또 없었다. 아세로라나 진한 레드체리처럼 느껴지는 달큼한 과일향이 그녀 쪽에서 은은하게 베어 나와 마음을 간지럽혔다. 아까부터 성경 어플을 보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이런 일체의 느낌들로 이미 너무 예민해져서 스마트폰 속 성경 구절이 설익은 쌀알갱이처럼 눈앞에 어른거렸다.

이 모든 것은 느낌이었다. 나의 느낌일 뿐이었다. 아직 그녀를 분명히 못 본 채였다. 저녁에 먹은 식당의 채소가 그렇게 신선했었나. 그러니까 이를테면 대뇌의 반사적인, 생물학적 호르몬 활동 같은 것일까. 음, 흠.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목청을 가다듬는다. 목청 가다듬는 소리를 들어보니 젊은 여자 목소리다. 사실 앉기 전부터 시작해 그녀가 먼저 나를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것이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망상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열네 살 때나 스무 살 때처럼 내 심장이 뛴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이따금 지하철이 실외 승강장에 설 때마다 잠시 열리는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봄밤의 바람이 이 모든 느낌에 악마의 코팅을 덧입히고 있었다. 불필요하고 공허한 생각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삶의 리듬을 뺏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처럼 고혹적인 분위기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애써 그녀에게 신경 쓰지 않으려 자신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녀는 곧 스마트폰을 열어 무언가를 찾아보는 듯했다. 그녀가 나보다 앞으로 조금 더 엉덩이를 빼고 앉았기에 조금만 옆으로 시선을 돌려도 스마트폰 화면이 잘 보였다. 검색창에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이라고 적고 있는 것 같았다. 심리학 관련 영상을 찾아보려는 것일까. 그즈음 마음이 조금 설컹거렸다. 종전까지는 큰 무리가 없었는데 그녀가 유광의 멜란지 그레이 네일로 톡톡 거리며 그 문구를 입력할 때 마음이 미세하게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상담이나 심리 영역을 탐구하는 여자에게 내가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이라는 독특하고 음울한 단어들을 또박또박 입력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실연을 겪었을까. 너무나 궁금해졌다. 문구 자체가 너무 신비로웠고, 시종일관 그녀의 태도도 우수에 차 있었기에 이제 도무지 신경이 쓰여 나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앞으로만 걸을 줄 아는 작은 로봇이 모퉁이 사각지대에 부딪혀 지잉 치크, 지잉 치크 하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져 있었다.

도널드 덕처럼 푸득푸득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려 애썼다. 그러다가도 흔들리는 넓은 풀잎 위에 앉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는 이구아나처럼, 고개가 혼자 왼쪽으로 돌아갔다. 그때 다시 한번 그윽하고 진한 마스카라 칠(속눈썹에 칠하는 것을 정확히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이 입혀진 속눈썹을 보았다. 내가 충분히 컨트롤 가능한 항상심을 유지하고 있었던 때는 그때까지였던 것 같다. 이구아나의 고개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던 찰나의 순간, 스치듯이 옆볼을 보고서 그녀의 얼굴 피부가 약간 까무잡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말았다.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의 감정 안에서 에로티시즘이 발생하는 것을 느꼈다. 아, 어인 연유인지, 나는 피부에 약간 구릿빛이 도는 사람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구나. 나는 그런 사람이구나. 내게 정말 많은 사실들과 연구 성과를 남겨준 그녀는 내릴 역이 가까워온 듯 천천히 일어나 출입문 앞에 다가가 섰다. 출입문 유리창에 드리운 캄캄한 밤빛에 반사되어 보이는 나를, 한번 더 흘깃 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열차가 멈추자 유유히 내렸다. 그렇게 내게 많은 숙제를 떠넘기고는. 긴 생머리, 5월의 교생 선생님처럼 일장춘몽의 짙은 여운만 남기고 저 멀리 푸른빛 찬 봄밤 속으로 사라져 갔다.

오해와 망상이 지나쳤다는 것.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순간을 꼭 써두고 싶었다. 아름다운 여행지에 가면 사진을 남기고 싶듯이 울렁거리는 순간을 써 내려가 보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좀처럼 만나기 힘든 감정이 되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겨, 이제 스무 살의 요동하는 설렘은 철크덕철크덕 출발한 기차에서 돌아보는 작은 시골 기차역처럼 가슴 시리게 멀어져 간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감정들, 감각들. 모두 느껴도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렇게 너그러운 말 해주는 이 거의 없으니 그럴 수 있어, 괜찮아. 내가 나에게 말을 걸어 보는 것이다. 끊임없이 단속하는 자신과 그에 저항하는 자신 사이에서 이미 충분히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고 있다. 나의 칼로리는 생각만으로 0에 수렴한다. 하루하루, 눈부신 봄이 이렇게 흐르고 있다. 에로티시즘이란 게 무엇일까 계속 생각해본다. 무엇이기에 죽었던 심장을 뒤흔들어 뒤숭숭하게 만들고, 기어코 평화를 깨트리는지.